이웃 위한 나눔과 돌봄의 기쁨

 UN, 월드비전(舊 한국선명회) 등에서 평생을 사회봉사 활동에 바친 인제대학교 총장 이윤구 박사. 그는 지난 1994년 한국선명회 회장 재직 시 우리교회와 함께 북한에 양곡 보내기 운동을 펼치며 대북 관계의 물꼬를 트는 일에 앞장서기도 했다.
 인제대학교 총장 취임 후 이윤구 박사가 가장 앞장서서 실천한 일도 낙동강 살리기 운동 등 대학인의 사회봉사활동이었다. 그것은 인제대를 민족을 이끌어갈 대학으로 키운다는 구상 하에 우리 사회 대표적인 낙후분야 가운데 하나인 사회봉사 의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지난해는 UN이 정한 자원봉사의 해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원봉사의 잣대로 보면 중진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들의 자원봉사율이 30∼40% 정도는 돼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정부 공식 통계로도 5∼6%밖에 안되는 실정입니다”
 현재 낙동강 살리기 운동은 바다 살리기 운동으로 확대, 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1월 1일 2001명의 인제대생들이 청정구역인 남해 바다의 한 섬에 모여 쓰레기 청소를 하는 SOS(Save Our Sea)운동을 벌이는 등 앞으로 SOS운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도움을 필요로 하는 후진국에서의 봉사활동도 전개해 나갈 구상이다.
 사회봉사 활동에 대한 이윤구 박사의 정열은 노구에도 식을 줄 모른다. 그 시작이 궁금해 묻자 이 박사의 이러한 열심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고생만 하다가 6·25 때 피난길에서 얻은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의 묘소에서 통곡하며 다짐을 한 것이 바로 ‘내 평생을 어머니처럼 굶주리고 전쟁에 시달리고 의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신음하는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었다.
 6·25 전쟁은 이윤구 박사에게 분명 큰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그의 신앙생활이나 영혼의 순례를 위해 세상을 다 주고도 못 얻을 체험을 하게 했다. 전쟁은 그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게 했고 그래서 삶이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찾게 했다.
 휴전이 되기 전 이윤구 박사는 부산으로 내려와 신학생이 되었으며 휴전 후 서울로 올라와 학업을 계속했다. 이때 한 스승의 영향을 받아 빈민굴에서 세틀먼트(Settlement)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야간학교 운영으로 미취학 어린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고, 주택을 지어 나누어주기도 했다. 또 탁아원을 운영하며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급식사업 등을 전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과 함께 그의 삶에 평생 잊을 수 없는 귀중한 열매를 맺게 한 것이 있다고 했다. 여러 독지가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집을 짓고 모은 성금으로 맨발로 찬 땅을 밟고 다니던 사람들에게 신발을 사서 나누어주던 일, 그리고 구제물자를 얻어다가 헐벗은 아이들에게 입혀줄 때의 즐거움은 지금도 그의 가슴을 뛰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신학공부를 하는 동안 이 박사는 도립 군산병원에서 평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1956년 여름, 당시 전쟁 후 구호와 의료사업을 위해 전북 군산에서 활동하던 체이커 봉사단에서 일할 때였다. 이 박사에게 맡겨진 일은 북한에서 온 피난민들 가운데 병으로 신음하는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구호하는 일이었다.
 어느 날 황해도 출신의 연약하고 귀여운 소녀가 응급실로 실려왔다. 당시는 양잿물로 빨래를 했는데 독성이 강해 이따금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삼키곤 하였다. 이 소녀도 그런 방법으로 세상을 하직하려 했던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12세의 이 소녀는 입안과 목이 시커멓게 타서 음식도 먹지 못했고, 의사나 간호사의 권유에도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며 내버려둘 것을 애걸했다. 어린 소녀를 만난 지 사나흘쯤 지나 청년 이윤구와 소녀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그의 간절한 기도로 소녀는 다시 살아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
 당시 군산병원에서 일하던 외국인 봉사자와 한국인 의사, 간호사들은 주말에 교대로 대천 해수욕장에 가서 지친 몸을 쉬는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박사 또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군산으로 이틀간 떠나있었는데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에게 맡겨졌던 어린 소녀는 보리밥 덩어리를 목에 넣다 질식해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다.
 슬퍼하고 참회하는 며칠간의 기도 끝에 절실한 신앙의 결단이 이 박사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피난으로 헐벗고 굶주리다가 사랑의 목마름으로 죽기를 결심했던 어린 소녀와 같은 다른 생명들을 대하게 될 때 그들이 곧 하나님이 이 박사에게 보내주신 과제이고 그들을 돌보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구체적인 봉사생활이 그의 기쁜 의무임을 재삼 다짐했다.
 “삶이 힘들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계속 무엇을 취득하고 그것들을 소유하기 위해 집을 만들고 도둑을 막기 위해 문을 굳게 잠그고 하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삶이란 하루하루를 괭이를 들고 삽을 메고 들로 나가 일을 하되 나와 내 가족보다는 남과 남의 일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며 충실하게 일하는 데 있습니다”
 ‘복음(기쁜 소식)’이란 예수님의 가르침을 남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복된 소식은 아픈 사람을 고쳐 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추워 떠는 이들에게 옷과 담요를 나눠주는 구체적인 행동임을 예수님은 누구보다 확실하게 가르치고 몸소 그렇게 사셨다. 섬기기 위해 오신 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기에 우리의 믿는 삶이 세상을 섬기는 일 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남의 일을 바로 내 일처럼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바로 ‘제자로서의 삶’이라고 그는 말했다. 말은 쉽지만 이 길은 바로 갈보리를 향한 험준한 언덕길과 같아서 결코 쉽다고 할 수가 없다.
 이런 점을 상기시키며 그는 기독학생회 시절의 경험을 말했다. 방학마다 근로봉사를 가지며 고아원을 짓고, 밭을 일구는 일도 하고, 좁은 길을 넓히기도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인 청년학생들과 땀을 같이 흘리고 꿀맛 같은 밥을 나누고 밤늦도록 토론하고 노래도 부르던 경험들. 이는 그의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되었고 삶의 동력을 제공해 주었다고 했다.
 “요새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밤낮 입시에 쫓기며 사느라 남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꼭 남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성적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많은 봉급을 받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몸으로 귀한 시간을 쪼개서 사회와 나라와 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일에 함께 한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