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전 1천년 경 발흥, 강력한 국가 맹위
고레스 대왕, 유대 종교회복과 귀환에 우호적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함으로 제국의 영화 끝나
선과 지혜의 신 ‘아후라 마즈다’를 최고로 숭배
주전 1천년기에 인도유럽인들의 한 부족인 이란족은 코카서스에서 이란으로 들어와 우르미아(Urmia) 호수가에 정착한 후 점차 인근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이때 그들은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으로 나눠졌다. 히스기야왕 때 유다왕국을 침략했던 산헤립은 파르수아쉬(Parsuash)로부터 침공을 당했는데, 이 지역의 지도자가 페르시아제국의 시조인 아케메네스(Achaemenes)일 것이다. 이로써 페르시아 제국은 아케메니드 왕조로 불리게 된다. 안산 지역의 왕 캄비세스 1세의 아들 고레스 대왕(Cyrus Ⅱ)은 메디아를 정복하고 모든 페르시아 부족들을 통일한 후, 마침내 주전 539년 10월 29일 바빌론으로 입성하였다. 그는 야웨 신앙인들의 찬사를 받을 만큼(사 45:1-7) 유대인들의 종교회복과 귀환에 우호적이어서 고레스의 칙령이 구약성경에 두 번 기록되어 있다(대하 36:23; 스 1:2-4).
고레스가 수행하지 못한 이집트 정복은 그의 아들 캄비세스(Cambyses)가 이집트의 새 파라오인 프삼티크 3세를 패배시키고 수도 사이스에 입성하므로 성취되었다(525 B.C.). 그 후 반란이 일어나 잠시 정국이 혼란한 상태가 되었으나 또 다른 아케메네스 후손 계열인 다리우스 1세가 정권을 잡고 반대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안정을 되찾았다. 이러한 혼란기의 정서가 학개와 스가랴에 반영되고 있으며, 반란을 진압한 내용이 비시툰 비문에 기록되었다. 학개의 권면으로 성전재건이 시작될 때 강 건너편 총독인 닷드내가 의문을 제기했으나 다리우스는 엑바타나 고문서 보관소에서 성전 건축에 관한 문서를 찾아내어 성전건축을 허락하였다.
주전 5세기에 들어와 페르시아는 그리스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으나, 마라톤 전투로 잘 알려진 제1차 페르시아 전쟁(490 B.C.)에서와 10년 후인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하였다. 그 무렵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는 궁중의 연회와 여인 속에서 세월을 보내는데, 아마도 에스더서는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일 것이다. 다음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비교적 수동적인 통치자였지만 유대인 귀환공동체의 생활에 간접적이나마 큰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고 칼리아스(Callias) 평화회담이 맺어질 때까지(448 B.C.) 지중해에 대한 페르시아의 영향력은 감소되었다. 다리우스 2세는 왕위를 계승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뿐 아니라 즉위 이후 반란을 진압하는 데도 난관을 겪었다. 주전 404년 다리우스 2세를 이어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그후 왕위 계승이 순탄치 않게 이어졌지만 말기의 페르시아 왕들의 특권과 권력은 여전히 강력했던 것 같다. 남아있는 명문들과 페르세폴리스의 계속된 건축, 이웃 나라들과의 유대강화 등이 그 사실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제국의 영화를 되찾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페르시아 왕들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급격한 세력확장을 자각했을 때는 이미 사태가 너무 늦었다. 마케도니아 필립 2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이 다리우스 3세의 군대를 격파하고, 바빌론과 수사, 페르세폴리스까지 점령함으로써 페르시아의 영화는 끝을 맺었다(331 B.C.).
고대 이란 사람들은 신들을 우주적 존재들로 생각한 다신교를 믿고 있었다. 그들은 우주적인 원리를 지배하는 세 신들이 있다고 여겼는데, 그 중의 최고신은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였다. 신들은 세계를 일곱 단계로 창조했으며, 예배와 희생의식을 통하여 새 생명의 상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식은 기본적으로 불과 물에 헌물을 드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란종교는 조로아스터에 의해 새로운 시작을 함으로써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가 된다. 영어명인 조로아스터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로 별이란 뜻을 가진 아스터가 합성된 이름이며, 철학자 니이체의 책으로 유명해진 짜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은 아베스타에 나오는 이름으로 낙타를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과거에는 조로아스터가 주전 6세기에 활동하였다고 여겼으나, 현재에는 그가 이란족이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생활하던 시기(1400-1200 B.C.)나 그들이 지금의 이란 지역인 남쪽으로 이주한 시기(1000 B.C.경)에 나타났다고 여기고 있다. 어쨌든 조로아스터는 혼란한 시대에 살면서 선과 악의 문제와 인생의 목적에 대해 깊이 묵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우주에는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존재인 아후라 마즈다가 있어서 선과 지혜와 선행을 주관하고, 안그라 마이뉴(Angra Mainyu)는 악과 무지와 악행을 주관하는 것으로 우주적 질서를 이해했다. 이들 신들은 3천년을 한 기간으로 하는 네 기간 동안 서로 대결하는데, 마지막 기간 초에 조로아스터의 탄생으로 종교가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참된 신앙인은 톱날로 된 다리를 건너 낙원으로 가고 악한 자는 심연으로 가라앉는다고 했다. 우주적 종말이 오면 운석들이 추락하고 땅이 뜨거워져 산에 있는 금속이 녹아 강처럼 흐르는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그런후 본래의 영원한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페르시아 제국에서 조로아스터교를 숭상했느냐는 것은 고레스와 캄비세스 때에는 불확실하지만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 때에는 그 비문을 통해 그들이 아후라 마즈다를 찬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